[Interview][Z인터뷰] '보통사람' 손현주 "나도 보통사람, 업소 유혹 갈등 많았다"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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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주연배우란 결국 작품의 간판이다. 하여 책임이 따르고 부담도 함께한다. 그런 의미에서 손현주는 주연배우가 맞다. 함께 개봉하는 작품들을 나열하며 “아니, 요즘엔 비수기도 따로 없어. 무슨 작품들이 2, 3월에 이렇게 많이 나와”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신경이 많이 쓰이냐”고 묻자 “난 비수기 전문 배우인데”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분명 엄살은 맞다. 연기로는 두말 하기 힘든 배우이고, 흥행 타율도 훌륭하다. 자신만의 연기 색깔도 훌륭히 구축하고 있다. 그런 배우가 홍보를 위해서라면 예능 출연도 마다 않는다. 아니, 출연하기 싫다는 동료 배우의 멱살을 부여잡고 함께 출연한다. 말 그대로 ‘손현주의 하드캐리’다. 그래서 그는 동료와 관계자, 그리고 관객에게 신뢰받는 주연배우로 충무로에 서있다.

영화 ‘보통사람’의 ‘성진’으로 분한 손현주와 제니스뉴스가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80년도 질풍노도의 대한민국 속에서 강력계 형사이자, 안기부의 검은 유혹 속에 가족을 위해 갈등하는 가장을 연기했다. 본인도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자 ‘보통사람’이었기에 더 애착이 갔을 터, 그가 가슴 속에 품어온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오래 묵혀뒀던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
김봉한 감독이 3년 이상 준비한 영화다. 그 결실이 나왔다. 사실 초고는 ‘공작’이라는 제목이었다. 시대도 1970년대에서 1980년도로 바뀌었다. 결국 영화가 여기까지 왔다. 사실 2년 전만해도 자유롭게 찍기는 힘들었던 영화다.

블랙리스트 문제가 현실을 휩쓸었는데. 정치적으로 바라볼 때 선뜻 선택하긴 힘든 작품이었다.
정치적인 지점은 김봉한 감독의 몫이다. 저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2년 전 초고를 받았을 때 ‘이 작품, 찍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긴 했다. 1970년대 연쇄살인사건을 기본으로 거대 세력과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결국 1980년대로 바꿨다. 제가 84학번이다. 그래서 오히려 70년대 보다는 그려내기 편했다. 사실 80년대는 그리 오래 전 과거는 아닌 것 같다.

로케에 공들인 것이 보인다. 그 당시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현장이다.
부산에서 3개월 정도 찍었다. 인천에서도 찍었고, 은평구 서부 경찰서에서도 찍었다. 당시 배경을 찾다 보니 전부 재개발, 재건축 지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촬영장소가 없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회차 내에 빨리 찍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고생이 많았다. 태풍 차바가 왔을 때도 촬영했다. 덕분에 강우기는 안 돌렸는데, 저희가 죽을 뻔 했다. 하하.

여러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통사람’에 대한 애착을 전했다.
특별히 ‘보통사람’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은 아니다. 김봉한 감독과의 작업을 기다렸다. 둘이서 대화도 많이 나눴다. 김봉한 감독이 옆에서 힘들어 하는 것도 지켜봤다. 무엇보다 약속을 했다. 2년을 기다렸다고 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물론 저도 사람이기에 ‘다른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약속은 중요한 것이니 지켜야 했다.

예능에도 나갔는데.
특별히 ‘보통사람’에 대한 애정이 커서 나간 건 아니다. 사실 예능에 나가면 미안하다. 영화 홍보 때만 나가는 것 같아서. 하지만 누군가 홍보를 해야 하고, 결국 주연배우 타이틀을 건 제가 해야 한다. 그래서 김상호 씨를 설득해서 함께 나갔다. 마치 많이 나간 사람처럼 “나만 믿어”라며 끌고 나갔다. 앞으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할 생각이다.

1980년은 참 신기한 시대다. 누군가에겐 치열했고, 누군가에겐 풍족했던, 모두가 추억하는 이미지가 다른 시대다.
맞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살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태평성대를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영화를 보면 ‘저 시절이 저랬다고?’라고 느낄 수 있다. 돈이 있던 아이들과 없던 아이들의 차이도 분명히 존재했다. 제 동기가 배우 손창민이다. 손창민에게 가장 부러웠던 게 나이키 운동화만 신고 조다쉬 청바지만 입었다. 그땐 그게 부의 상징이었다.

84학번이면 나름 격동의 중심세력 아닌가?
당시 저희의 화두는 등록금 투쟁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1984년 중앙대학교에 가서 연기를 배우는 시점이었다. 정극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뮤지컬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족해방극을 하는 팀도 있었다. 저는 정극팀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사람들이 우리 과 보다는 문창과 사람들이랑 친해졌다. 지금도 많이 만나고 있다. 물론 시위를 하는 팀도 있었다. 다만 제가 그 중심에 서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지도 않았다. 우리 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잡혀있었다.

당시의 손현주나, 영화 속의 성진이나 결국 보통사람이었던 거다. 만약 영화 속에서 성진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혼란스러울 거다. 고민도 많이 할 거다. 제가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거절 하겠지만 아내와 아이를 위할 수 있다면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밀어내는 쪽을 선택할 것 같긴 한데, 저도 아이 두 명을 키우는 아빠다. 정말 고민 많이 할 것 같다.

여하튼 결국 돈이 문제인 거다. 거기에 휘둘리는 게 보통사람인 거고.
맞다. 결국 돈이다. 저도 유혹이 있었다. 1996년도에 ‘첫사랑’이 히트를 했다. 거기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를 정말 많이 불렀다. 그 때문인지 업소에서 제안이 정말 많이 왔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현찰로 제시했다. 그걸 뿌리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업소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냥 막연히 두려운 지점이 있었다.

무명이 길었으니까. 당시 일도 혼자 진행하지 않았나.
운전도 제가 하고 의상도 제가 맞추고 그랬다. 그래도 혼자할 때 잘 해냈다. 드라마를 네 개까지 한 적 있었다. 당시 방송국은 제 놀이터였다. 그 당시 저와 놀아줬던 조연출들이 많은데, 그 중엔 그만둔 사람도 있고, 국장이 된 사람도 있다. 절 참 많이 도와줬었다.

그래서일까? 후배들을 작품에 추천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제가 연영과를 나왔는데 학연을 써본 적이 없다. 같은 과 나온 PD도 있는데, 그 분들과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선배들이 후배들의 손을 잡아주는 게 맞다고 본다. 대학로에 있는 친구 중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다. 그런데 오디션 정보도 모르고 추천도 못 받아서 쓰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이도 많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쓰임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기회를 주는 것 뿐이다.

차기작 계획은?
‘보통사람’이 끝나면 드라마를 할 것 같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라 드라마도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영화는 흥행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니 미안한 마음이 크다. 제작사와 투자자들을 직접 마주해서 더 그렇다. 누군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는 하는데 전 신경을 쓰는 편이다.


사진=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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