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Z인터뷰] '해빙' 이청아 ② 그가 용감해진 이유,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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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어느덧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는 까만 밤하늘을 빛내는 별이 돼있었다. 지난 2004년 ‘늑대의 유혹’으로 강동원과 조한선의 사이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갖은 질투를 받아냈던 이청아였다. ‘라이징 스타’라는 예쁜 별명도 받았지만 ‘벼락 스타’라는 눈총도 받았다. 이른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여러 갈래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청아의 발걸음은 다소 더뎠다. 작품을 마다했고 학교에 매진했다. 이름값에 얹어진 인기를 자신의 연기 그릇으로 오롯하게 담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터다. 그리고 다시 초심으로 시나브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갔다. 이젠 그 누구도 이청아를 ‘벼락 스타’라는 말로 폄하하지 않는다. 그는 진정 노력하고 도전하는 배우다.

이청아는 영화 ‘해빙’을 통해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그간 자신이 쌓아왔던 이미지를 버리고, 자칭 ‘어둠의 세력’에 있는 간호사 ‘미연’을 연기했다. 언제나 밝은 모습을 보여왔던지라 다소 어색했을 수도 있던 역할. 하지만 이청아는 “정말 잘 어울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박수를 받았다.

자신이 내놓았던 과제를 해결한 이청아와 제니스뉴스가 만났다. 영화 속 이미지와는 또 다르게 너무나 해맑은 모습으로 웃고 있던 이청아. 하지만 조곤조곤, 나아가 조목조목 조리있게 자신의 연기관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젠 어엿한 베테랑 배우의 면모를 느끼게 했다.

▶ 1편에서 이어

예전보다 단단해진 것 같다. 착각일까?
사람이 큰 일을 겪고 나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용감해졌다. 하고 싶었던 것, 계획했던 것들이 제 마음 속의 생각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엔 ‘돌다리도 두들겨보자’였다면, 지금은 아니다. 사랑도 안 해본 사랑이 더 오래 미련 남는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은 것 같다.

돌다리를 두들겨도 너무 두들기기는 했다.
‘늑대의 유혹’ 이후엔 작품을 1년 간 안 했다. 어쩌면 배우 인생에서 작품이 제일 많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하지만 전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절 알아봤다. 그것도 부담이지만 이청아가 아닌 작품 속 캐릭터로 알아봤다. 제 성격도 그 캐릭터처럼 봤다. 당시 제가 21살이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시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전 배우로서 겪을 일들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안 돼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매진했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CF도 찍고, 작품도 많이 했을 거다. 하하.

당시 워낙 화제가 됐던 작품이기도 했고, 이미지가 워낙 각인됐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전 문안한 역할을 지금까지 해왔던 것 같다. ‘늑대의 유혹’을 이야기하자면 전 두 남자를 빛내줘야 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제가 빛나는 걸 경계하면서 연기해왔다. 그 후로 비슷한 구조에서 롤을 맡다 보니 그런 역할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제가 빛나는 조연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아 연기의 화법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돌이켜 보니 스스로 실수라고 느끼는 지점들도 많이 보였다. ‘해빙’은 그런 실수를 겪고 난 후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을 때 온 작품이다. 정말 많은 고민 속에 들어갔다.

확실히 '미연'은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해빙’은 제 가공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사실 도전은 여러 번 했다. 데뷔는 청순하고 약한 캔디형 캐릭터였지만 ‘놈놈놈’에서 액션에도 도전했고,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는 철없는 캐릭터도 연기했다. 하지만 그 모든 캐릭터가 빛의 영역에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해빙’부터는 어둠의 끝에 가있는 역할을 해봤다. 그래서 더욱 각별한 작품이다.

연극도 또 하나의 도전이었을텐데.
배종옥 선배님하고는 드라마를 두 작품 같이 했었다. 선배님은 참 쿨하신 분인데 제겐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제가 처음에 선배님 딸 역할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일부러 집으로 불러서 대본도 봐주시기도 했다. 정말 많은 걸 물어봤다. 연기를 넘어 배우로서 겪는 일들에 대한 고민까지 다 털어놨다.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나침반이 돼주셨다.

연극도 그랬다. 드라마 찍는 도중 선배님 연극을 보러 갔는데 선배님이 “너 무대 한 번 섰으면 좋겠어. 언제 나랑 연극 한 편 하자”라고 하셨다. 하지만 제가 낯도 많이 가리고, 여러 사람 앞에 서는데 공포를 느끼는 편이라 겁을 냈었다. 하지만 나중엔 ‘공포스러울 수 있지, 하지만 하면서 깨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연극을 하게 됐는데, 첫 연극인데도 꽤 롤이 컸다. 아마 예전 같으면 피했을 거다. 하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봤었다.

연극하면서 배운 것도 많겠다.
목소리가 커졌다. 하하. 제 역할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뚫어야 하는, 소리치는 연기가 많았다. 그런데 처음엔 뚫지를 못했다. 하지만 나중엔 “볼륨 좀 줄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정말 기분이 좋아서 춤을 추며 집에 갔던 기억이다.

아버지(이승철)가 연극계의 대부시다. 조언도 있었을텐데.
아빠는 절대 제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디테일한 이야기도 안 하신다. 어느 날 “선배들 걷는 거 한 번 봐”라고 하셨다. 그래서 발만 보면서 모니터를 해봤는데 정말 확 깨닫는 게 있었다. 선배님들의 발걸음은 무게가 있었다. 마치 무거운 추가 걷는 느낌이었다. ‘난 얼마나 팔랑팔랑 종이인형처럼 걷고 있었을까’라는 부끄러움이 다가왔다. 음식을 잘게 녹여 떠 먹여주면 먹을 수는 있지만 씹어 먹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하지만 크게 말씀해주시니 다 먹지는 못해도 제대로 씹어 먹는 게 두세 개 생기는 것 같다.

데뷔 초기엔 아버지가 엄청난 분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맞다. 우리 집은 그런 것도 없었고, 오히려 안티팬만 있었다. 연극영화과에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정말 반대 많이 하셨다. 가슴에 대못도 박아주셨다. “넌 배우를 하기에 좋은 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이목구비도 작고, 목소리도 낮고 작다”고도 했다. 오히려 반항심리로 “그럼 연출할 거다”라며 대학에 갔다. 나중에 대형 소속사의 캐스팅제의 소개를 전해도 “사람들이 미쳤나보다”라고 하셨다. ‘늑대의 유혹’ 때도 안 와보셨다. 그런데 나중에 엄마가 말해주길 “몰래 가서 보셨다”고 했다. 여학생 틈바구니에서 그걸 보셨단다. 하하.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작년 목표가 ‘스펙트럼을 넓히자’ ‘한 가지 색깔만 더 갖자’ 였다. 어쩌면 ‘해빙’을 통해 제게 의뭉스러운 색깔을 하나 덧칠했다고 생각한다. 올해 목표? ‘뭐든 들어만 와라!’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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