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Z인터뷰] '어느날' 김남길, 120점 보다 70점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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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와하하하하! 여기 인터뷰 진짜 재미있다!"라고 소리지르자, 아래층에선 "와하하하하하! 여긴 더 재미있다!"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선창은 배우 김남길이었고, 후창은 배우 천우희였다. 바로 제니스뉴스와 김남길이 만난 '어느날'의 인터뷰 자리였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이날 인터뷰는 으레 그렇듯 각 층마다 배우들이 포진에 취재진을 맞이했다. 같은 건물 내에 있으니 각 자리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전해지기 마련. 아랫층에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이를 질투한 듯 김남길은 더 크게 웃으며 앞서 설명한 상황을 만들었다. 김남길과 천우희가 얼마나 재미있게 영화를 작업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어느날'은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영혼이 된 여자 '미소'(천우희 분)와 유일하게 그의 영혼을 보는 남자 '강수'(김남길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멋진 하루' '남과 여' 등 특별하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가 담긴 멜로로 관객들의 찬양 받는 이윤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러나 '어느날'은 멜로 영화가 아니라는 건 미리 밝혀둔다. 그럼에도 두 배우가 이리 친밀하다는 건, 이윤기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맞물려 영화 속에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걸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김남길과 제니스뉴스가 나누었던 영화 '어느날'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고사했다고 들었다.
‘어른 동화’ 같다고 생각했다. 판타지가 들어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장치적으로 활용될 지 의문이 생겼다. 강수라는 캐릭터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다시 받은 시나리오에서는 강수의 죄책감과 정서가 와 닿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그 감성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윤기 감독이라는 이름도 선택에 도움이 됐겠다.
처음엔 ‘이 시나리오를 이윤기 감독님이 하신다고?’라며 의아해 했다. 감독님이 고생 많이 하셨다. 이윤기 감독님의 색채가 분명 있으니까, 예술영화라는 편견 속에 상업성이 묻힐까 고민하신 것 같다. 아마 이번 작품은 이윤기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가 된 것 같다. 중간 중간 피식할 수 있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

이윤기 감독과 작업은 어땠나? 천우희 씨와 첫 촬영도 애드리브로 처리 했다던데?
정말 디렉션이 없으시다. 천우희 씨와 처음 만나 찍는 장면이 바로 드라이브 하는 장면이었다. 감독님이 “그냥 한 바퀴 잘 다녀와”라며 떠나 보내셨다. 레카차로 가는 것도 아니고, 정말 운전하면서 애드리브로 연기했다. 천우희 씨가 참 센스가 좋다. 우희 씨에겐 다소 짓궂을 수도 있는 설정이었는데 잘 받아냈다. 첫 촬영인데 그때 이미 믿음이 생겼던 것 같다.

두 사람, 굉장히 어울려 보였다. 멜로가 들어가면 이상했겠지만, 묘하게 기대하게 만드는 하모니였다. 멜로에 강한 이윤기 감독 작품이라 더 그랬다.
시나리오 수정단계에서 멜로도 생각해봤다고는 하는데, 결국 영화가 멜로로 흘러가지 않게 방향을 잡았다. 그것을 위해 촬영 구도부터 서로의 호칭까지, 여러 가지를 신경 썼다. 미소가 저에게 강수 씨라고 하는 것도, 오빠라고 하는 것도 어색했다. 사실 아저씨도 약간 멜로로 갈 수 있는 지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거리가 느껴지는 호칭이라 생각했다. 구도 같은 것도 수족관을 구경하는데, 아무리 거리를 둬도 데이트 하는 느낌이 나서 애먹었다.

천우희 씨와 호흡이 좋았다 하니 멜로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다음 작품으로 미뤄두기로 서로 이야기했다. 하하. 당초 천우희 씨의 미소는 원래 설정보다 순수한 면이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더 조숙한 미소였다. 그래서 처음 촬영장에서 천우희 씨의 단미소 연기를 보고 놀란 부분도 있다. 결국 호흡이 잘 맞아서 좋았다. 특히 마지막 제 감정신에서 본인이 대사를 어떻게 던져줄 지 물어보고 도와줬다.

천우희 씨가 김남길 씨를 “현장에서 ‘대장’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안 그래도 그 이야기 때문에 감독님이 “그럼 나는 뭐야?”라고 물어봤다. 우리 감독님이 그렇게 순수하다. 어린 아이 같을 때가 있으시다. 사실 영화도 비롯해 모든 일은 힘들다. 그러나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에 가면 분위기를 띄우는 편이다. 예를 들어 카메라 감독님이 앵글을 잡을 때 괜히 가서 장난도 치고 농담도 건넨다. 다행히 스태프 분들이 잘 받아줬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고충을 듣는다.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배우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챙겨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아내를 잃은 강수의 처지는 참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그 감정을 폭발 시키지 않고 속으로 감내하고 있다.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남의 사정을 신경 써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감정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기 힘들었을텐데 그걸 능히 해냈다.
아내인 선화가 아프고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그 과정의 변화를 그려내기 힘들었다. 병을 인지하고, 수술도 하고, 상황을 극복하려는 과정, 그러다 화를 내는 모습 등 아픈 이의 주변 사람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왜곡시키거나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내 힘든 상황도 복합적으로 얽혀있으니 촬영하면서 짜증이 일기도 했다. 아내에게 너무 다정하게 말하면 그건 또 가식처럼 보일 수 있었다. 지친 마음, 슬픈 마음, 힘든 마음, 거기에 사랑하는 마음까지 표현해야 하는데, 그 수위를 조절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강수의 처지는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아내의 상황도 그렇고 미소와의 관계도 그렇다.
사람마다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강수는 죄책감을 안고 현실을 회피한다. 어쩌면 용기가 없는 친구다. 그런 부분이 저와 닮았다. 평소엔 긍정적인데, 그럴 땐 저도 그런 부분이 많다. 그러나 회피하는 건 극복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강수가 아내와 추억을 회상하는 신이다. 창 밖으로 아내의 모습을 보는데, 마지막엔 자신의 모습을 봤다. 정말 짠했다. 죄책감에서 벗어난 거고, 아내의 죽음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거였다.

강수를 표현하는데 빛을 발한 게 바로 목소리다. 본래 목소리 좋은 배우로 유명했지만, 이번 작품에선 특히 돋보였다.
제 매력포인트로 봐준다면야 그저 감사하다. 그러나 목소리 부분은 의식하지 않으려고 경계했다. 부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예전에 내레이션 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편하게 일상적인 목소리로 다가서려고 했다.

단순히 듣기 좋았다는 게 아니라, 힘을 가하는 것이 아닌 힘을 뺀 목소리라 강수의 상황과 잘 어울렸다. 그럼에도 톤이 너무 좋아 매끄럽게 들리는 것도 매력있었다.
시간 속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쌓인 모습들이 연기에 투영되는 것 같다. 예전엔 잘 모르니까 무조건 힘을 줬는데, 이제는 오히려 힘을 뺀다. 물론 연기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이야기를 풀면서 제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엔 확고하게 가져갔던 신념도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연기는 그렇게 인생과 닮아있다.

매번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자신을 칭찬해도 되는 거 아닐까?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 김남길의 매력은 어떤 걸까?
‘평범함’이다. 제가 특별한 개성이 없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각인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대로 모든 역을 무난하게 맡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여러 옷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싶다. 예전엔 ‘왜 내겐 120점 짜리 작품이 안 들어올까’라는 고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지금은 ‘70점 짜리 작품이 오면 내가 120점 짜리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사진=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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