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박열' 최희서 ② "영화 연기가 뭐길래, 자괴감도 들었지만"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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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 ‘박열’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활약한 ‘박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전작 ‘동주’를 통해 윤동주와 함께 송몽규를 그려낸 바 있다. 이번 ‘박열’도 같다. 박열의 대구엔 가네코 후미코가 위치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의 아나키스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훗날 사회주의자와 교류하며 자신의 신념을 키웠다. 이후 박열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며, 그와 함께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한 대역죄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만큼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영화 ‘박열’에서 박열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이 가네코 후미코다. 그 인물을 배우 최희서가 연기했다. 지난 2009년 데뷔했지만 영화판에선 다소 무명이 길었던, 그러나 지난 해 ‘동주’의 ‘쿠미’로 강한 인상을 안겼던 그가 다시 한 번 이준익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그간 연극과 단편 영화로 쌓아왔던 내공으로 가네코 후미코를 스크린에 살려냈다.

최근 제니스뉴스와 배우 최희서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인의 자세로 7일이나 1:1로 매체를 만나고 있는 최희서였다. 체력의 부침도 있을 터인데, 그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마주하는 최희서. 실제로 만난 그는 가네코 후미코만큼이나 자신의 뜻을 똑똑하게 풀어낼 줄 아는 배우였다.

▶ 1편에서 이어

상업 영화의 첫 주연을 맡은 소감은?
연극이나 단편 영화에서는 주연을 했었는데, 말 그대로 상업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가네코 후미코를 맡았다는 건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사실 ‘주연을 하고 싶었다’는 마음은 없다. 그저 연기를 하고 싶고 오디션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 역할이 그만큼 적다. ‘동주’ 이후에 본 오디션이 ‘옥자’ 밖에 없었다. 물론 제 탓도 있겠지만, 오디션 자체가 없으면 별 수 없다. 그래서 ‘박열’을 만난 건 제 평생 운을 다 쓴 것이라 생각한다. 연극을 하길 잘한 것 같다. 연극을 안 했으면 신연식 감독님도 못 만났을 거고, 이준익 감독님도 못 만났을 거고, ‘동주’도, ‘박열’도 못 만났을 거다.

2009년 ‘킹콩을 들다’ 이후 무명의 기간이 길었다.
그간 단편을 많이 찍었다. 워낙 소규모의 작품이 많았다. ‘킹콩을 들다’ 당시엔 준비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갔던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 그런 프로의 현장이 처음이었다. 연극에서는 선배들에게 예쁨 많이 받았는데, 영화에서는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영화 연기가 뭐길래 이렇게 힘들까’ 싶었다. 2010부터 단편 영화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영화제도 갔다. 이후 계속 영화 쪽으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나름 인고의 시간이었겠다.
힘들긴 힘들었다. 그러나 전 하고 싶으면 하는 스타일이다. 집에서 고민하기 보다는 나가서 일을 저지르는 스타일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단편이든, 소규모 연극이든 하고 본다. 정 안 되면 후배들 데리고 워크샵도 하고 그랬다.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나 연출도 했다.
연출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연기를 하다가 오디션에 떨어지거나 차기작이 안 정해질 때 시나리오를 쓰거나 단편을 써서 연출을 했다. 이번에 이준익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시나리오 작성에 대해 많이 배웠다. ‘이래서 조감독들이 이준익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때 일본에서 한인학교를 다녔다. 그때 ‘심청전’을 올렸는데, 제가 심청이를 맡았다. 8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때 희열이 너무 좋았고,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학교는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갔다.
미국에 있을 당시 고등학교 특별 수업으로도 연기를 들었었다. 그때도 대학교에 가면 연기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전 한국 커리큘럼에 연영과가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열심히 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학교에 가면, 그 뒤에 제가 원하는 연기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했다.

공부를 잘했나 보다. 당시 연세대에서 신방과는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였다.
제가 들어갈 땐 사회과학계열로 들어갔다. 2학년 때 과를 정할 때 그나마 연극영화와 비슷한 학과를 고르려고 했다. 1학년 때 성적으로 원하는 학과를 갈 수 있기에 제가 꼼수를 썼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본어나 영어 같은 수업만 들었다. 그래서 학점이 죄송할 너무 잘 나왔다. 뭔가 죄송스럽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후미코랑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진취적인 면?
제가 생각해도 전 후미코랑 닮긴 닮은 거 같은 거 같다. 물론 그가 더 용감하지만 기본적인 기질은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배우들의 해외 진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언어다. 그런 면에서 최희서라는 배우에겐 해외 시장이 보다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전 한국 영화에 더 기여하고 싶다. 아직 한국 관객에게 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많은 분들이 믿음직한 배우라고 생각을 해주시는 게 먼저다. 그 이후엔 오디션을 보거나, 할리우드 진출을 꿈꿔도 된다고 본다. 미드 같은 경우의 오디션이 꽤 많다고 한다. 그런 걸 마다하진 않겠지만, 당장 먼저 나서서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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