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Z인터뷰] '남한산성' 박해일의 행복한 한숨,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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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쌍끌이 당했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박해일도 이런 볼멘소리를 할 줄 알았다. 최근 ‘남한산성’의 인조를 연기한 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제니스뉴스와 만나 던진 하소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한산성’ 속 인조라는 캐릭터가 그랬다. 외부에선 청나라의 군대가 성을 둘러쌓고 있었고, 내부에선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 양축의 제일 앞선엔 이병헌과 김윤석이 버티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뿜는 강경한 기운을 박해일은 인조가 되어 고스란히 받아냈다. 하여 박해일의 하소연은 두 선배를 향한 감탄사이자 존경이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이병헌과 김윤석, 최명길과 김상헌이라는 구슬은 박해일과 인조로 꿰어져 더욱 빛이 났다. 이병헌과 김윤석이 앞다투어 박해일을 치켜세운 건 괜한 칭찬이 아니었다. 그 중심의 역할을 능히 해낸 건 그의 능력이었다. 하여 박해일의 감탄사는 안도의 한숨이자 자신을 향한 작은 칭찬이었다.

김훈의 베스트셀러라는 원작의 무게, 그리고 많은 이가 부끄러워하는 우리 선조의 치욕스러운 역사, 나아가 걸출한 선배 배우, 더불어 그 누가 맡아도 어려웠을 ‘인조’라는 캐릭터까지, 박해일에겐 여러가지 부담이 있었을 ‘남한산성’. 하지만 호연을 통해 관객 앞에 당당하게 자신의 결과물을 내놓은 박해일과 나눈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언론시사 때 영화를 처음 봤다. 사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전 이 시나리오가 어떤 톤으로 나올 지 예상을 해본다. 그리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더한다. 그것을 영상으로 볼 땐 ‘과연 내 예상대로 나왔냐’를 보게 된다. 무엇보다 ‘남한산성’은 시나리오만큼 담긴 것 같아 다행이다.

원작 소설은 언제 봤는지.
처음 봤던 건 ‘최종병기 활’을 촬영할 때였다. 그리고 이번에 촬영을 앞두고 다시 꺼내서 봤다. 아무래도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달랐다.

이병헌 씨와 김윤석 씨가 ‘인조’ 역을 맡을 배우에 대해 많이 걱정했단다. 너무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라.
저도 그 이야기 들었다. 제가 뒤늦게 합류해서 영화사 근처에서 밥을 같이 먹는데 “너무 좋다. 네가 하게 돼서”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런데 고생 좀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고생이 어떤 고생인지는 이야기 않하셨지만, 사실 촬영장에서 저만 고생할 일이 없다. ‘다 같이 잘 해보자’라는 뜻에서 말씀하신 것 같다.

이병헌 씨 말로는 명길과 상헌은 하나의 확고한 사상과 노선이 있기에 그려내기가 인조보다 쉽다고 했다. 그 반대로 인조는 우유부단하고 명확한 캐릭터가 없기에 어려울 거라고 했다.
음…, 사실 하나의 사상과 하나의 신념, 그걸 밀어붙이는 그런 캐릭터를 깊이 파내는 것도 어려울 일이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야 저도 준비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제 어려움은 이병헌, 김윤석이라는 두 배우의 존재감이었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기운을 받아 내는 게 부담이자 숙제였다. 한 작품에서 두 분을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을 일이다. 한 작품에서 한 명씩 만나기도 힘든 배우들이다. 말 그대로 ‘쌍끌이’ 당했다. 하하.

왕 역할에 대한 부담도 있지 않을까?
제가 왕 역할이 처음이었다. 무게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광해’ 이병헌 선배가 앉아 계시니 여러가지 물어보고도 싶었다. 그런데 선배도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방해되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신 것 같다. 이병헌 선배, 김윤석 선배가 저를 배려해 주신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저만 잘 하면 될 영화였다.

인조라는 왕은 어땠나?
인조는 제 필모에서도 독특한 지점에 있는 인물이다. 인물이 보여주는 톤이 굉장히 절제돼 있다. 그럼에도 감정 변화가 혼란의 끝까지 가는 인물이다. 매우 낯선 톤이었지만 새롭기도 했다. 인조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향하고자 했던 것은 ‘그 평가대로 무능한 임금을 1차원적으로 보여주진 말자’였다. 신하의 갑론을박 속에 혼란을 느끼고, 후반부로 고뇌하는 인조의 민낯을 그리고 싶었다.

인조의 감정 표출은 드물다. 가끔 보여주는 것 또한 연산군의 광기와 달랐고, 태조나 태종, 세조의 위엄이나 카리스마와 달랐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의 절규 같았지만, 그마저도 강렬하지 않다.
청나라의 압박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답답한 상황 속에 신경쇠약이 걸렸을 인물이다. 트라우마도 많았다. 예민하고 의심이 많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것을 얼마나 드러낼 지 톤 조절에 집중했다.

역사적인 사건의 흐름이 있기에 촬영 순서도 중요했을 것 같다.
감정이 쌓여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다. 특히 배우 입장에선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보니 순서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최대한 순서대로 찍으려 했다. 덕분에 감정을 쌓아가는데 있어 좋았던 촬영이었다.

사실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패배의 역사다. 임진왜란과는 다가오는 결이 다르다.
‘남한산성’에 담긴 사료는 비극적인 역사이지만, 우리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절망 속에서라도 모든 걸 내려놓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본다. 감추고 싶은 역사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 민낯을 보고,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여러 생각이 들 수 있다. 허나 그 상황을 남일 보듯 볼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명대사들이 많은 영화다. 개인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던 대사가 있다면?
현재 시대에 들어도 와닿는 대사가 있다는 건, 개인의 심정일 수도 있겠으나 ‘공감대가 아닐까’ 싶다. “밖이 아닌 안에서 싸우려고 하는가!”라는 대사는 지금 들어도 공감이 간다. 그리고 인조의 속마음이 드러낸 대사가 있다. “나는 살고자 한다”는 의사표현이었다. 그때부터 감정이 확 내려가는 것 같았다.

대사도 좋았지만 초라한 수라상을 받을 때 표정은 수많은 생각과 대사를 압축한 듯 했다.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었던 신이다. 인조 입장에선 ‘나보고 이걸 먹으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나만 이걸 먹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아마 여러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 뒤에 “곡식이 얼마나 남았느냐”라고 묻는데, 그 복잡한 감정은 관객이 판단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설날을 맞아 떡국을 하사한 것도 전 아이러니 했다. 사실 떡은 밥보다도 쌀이 훨씬 많이 소비되는 음식이다. 명분과 실리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던 인조와 조선의 상황이 그 한 그릇에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하하. 거기까지는 생각 못해 봤다.

끝으로 ‘남한산성’은 박해일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남한산성’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깨달음을 줬던 작품일 것 같다. 관객들이 ‘남한산성’을 보고 제가 반보라도 해냈다는 것을 느낀다면 배우로서도 좋은 일이다. 또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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