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Z인터뷰] '남한산성' 이병헌 ① "최명길 대 김상헌? 힘 대결, 필요 없었다"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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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이병헌은 연기를 잘 하는 배우다. 아마 대다수가 공감할 이야기다. 그런 배우에게 많은 시나리오가 몰리고, 흥행이 예상되는 작품이 먼저 다가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병헌은 말한다. "흥행보다는 다양한 필모를 원한다"고.

어쩌면 대중 앞에 나서는 배우의 입 발린 소리일 수도 있다. 허나 이병헌이 배우로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면 그것은 입 바른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매그니피센트7'을 통해 어린 시절 서부 영화에 대한 로망을 살렸고, 알 파치노, 안드레 홉킨스와 협연만으로 '미스컨덕트'를 선택해 관객을 만났다. 시나리오에 호평이 자자했던 '싱글라이더'와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밀정'도 같은 맥락일 터다.

그런 이병헌이 '남한산성'의 최명길로 돌아왔다. 병자호란은 우리 국민에게 있어 치욕의 역사 중 하나다. 하여 그 전말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꽤 있을 정도다. 많은 이가 쉬쉬하는 역사라는 것은, 어쩌면 영화로서는 약점 요소다. 또한 주화를 주장했던 최명길은 역사적으로도 외면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병헌은 최명길을 연기했다. 그의 호연 속에 우리는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수 있게 됐다. 최명길이라는 인물에 새로이 숨을 불어넣은 이병헌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병헌이 말하는 '남한산성'과 '최명길', 그리고 영화 속에 담겼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광해’에서 광해군을 연기했는데, 이번엔 그 광해를 끌어내린 인조를 모시는 신하 최명길을 연기했다.
아이러니하다. 어쩌다 보니 바로 이어지는 왕조가 됐다. 그래도 신경 쓰진 않았다. 전 배우다. 작품에 따라 악역도 하고, 착한 사람도 연기한다. 물론 다음 왕조로 이어진다는 미묘한 재미는 있었다. 무엇보다 너무나 훌륭했던 시나리오였다. 이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고 제 마음을 확인한 이상, 전작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박해일 씨의 이야기로는 “영화 초반 이병헌 씨가 ‘광해’처럼 보였다”고 했다. 분명 자기가 왕인데도.
하하. 전 왕 전문 배우가 아니다. 딱 한 명 해봤을 뿐이다. 사극도 이번이 세 번째다. 절대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해일이를 보면서 “너 진짜 힘들겠다”고 이야기했었다. 왕 역할이기 때문이 아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인조를 누가 할까? 정말 누가 맡아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일이가 맡았다고 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일이에게도 “너처럼 잘 하는 사람이 돼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제게도 그랬지만 감독님께도 천군만마 같은 캐스팅이었다. 그럼에도 해일이가 초반엔 긴장을 많이 한 거 같았다.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조는 힘들고 중요한 역할이 맞다. 인조는 김상헌과 최명길이라는 시소를 받치는 중심이었다.
김상헌이나 최명길은 한 가지 소신을 주장한다. 배우 입장에서 보면 캐릭터가 분명하다는 거다. 하지만 인조는 달랐다. 우유부단하고 흐리멍텅했다. 그럼에도 변화를 보여줘야 했다. 아주 미묘한 지점이다. 그걸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평소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남한산성’은 결국 대구법의 연출이다. 최명길 vs 김상헌의 구도가 쭉 이어진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영화가 망가져버리는 구도였다. 그리고 그것을 감독과 두 명의 배우가 능히 해냈다.
시나리오가 완벽했다고 말하고 싶다. 일부러 배우들이 대등하게 힘을 조절해서 부딪힐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힘의 균형이 완벽했다. 두 사람의 소신과 논리가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정말 놀라웠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김윤석 씨도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그저 대본에 충실해서 감정을 쏟아 넣으면 됐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연기다 보니 누구 하나가 더 튀어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감독님께서 후반 작업으로 조정 하셨을 것 같다.

대구의 형식을 따르다 보니, 관객들을 이야기로 이끄는 화자가 나뉘었다. 하여 몰입이 힘들다, 혹은 지루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다. 저도 그렇다. 아마 한국 영화 관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어느덧 센 영화, 자극적인 영화에 많이 노출됐다. 이젠 ‘내부자들’도 약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다른 영화다. 그런 차별점이 있기에 더 좋은 것 같다. 호흡이 다르고 결이 다르다. 그건 황동혁 감독의 소신 덕분이다. 감독의 소신이 마치 명길과 상헌 같았다.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사실 그 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다. 자신도 고민이 많았을 거고, 주변의 압박도 있었을 거다. 흔들릴 위기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정말 돌쇠처럼 밀고 나가며 자기 색깔을 담백하게 표현했다. 음악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가 우리 음악 감독이었다. 그럼에도 음악을 굉장히 절제해서 담아냈다. 정말 무서운 감독이다.

황동혁 감독의 소신은 여러 곳에서 느껴진다. 무엇보다 임진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은 우리에겐 다 같은 고난의 역사였지만, 와닿는 결이 다르다. 임진왜란에는 이순신이라는 승전보를 알린 명장이 있었지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말 그대로 치욕의 역사다.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있는 요소다.
분명 흥행 면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다. 반면 용감한 선택이라고 하고 싶다. 저는 이 쪽이 좋았다. 영화가 늘 승리의 역사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잘났어”라고 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 암울하고 실패한 역사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우리가 배울 것, 느낄 수 있는 걸 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선택하며 영화를 보는 건 좋은 일이다.

황동혁 감독과는 첫 작품이었는데 격찬을 한다. 그만큼 호흡이 좋았던 걸까?
에이, 첫 인상은 ‘아 이 감독님하고는 많이 친해지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신경질적으로 생겼달까? 하하.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는 1도 안 할 것처럼 생겼다.

첫 인상이 그랬는데도 작품을 선택한 걸 보면, ‘남한산성’은 정말 매력 넘치는 작품이었나 보다.
맞다. ‘시나리오가 좋으니까 하자!’였다. 하하. 하지만 알고 보니 황동혁 감독이 진짜 매력 있는 사람이다. 딱 하나만 예를 들자면 전작을 함께 했던 스태프가 꾸준히 황 감독을 찾아왔다. 배우보다 손님이 더 많은 감독이다. 예전 스태프들이 모두 황 감독의 팬이다. 예의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정말 눈에 하트를 “뿅”하고 나타난다. 영화를 관둔 스태프가 사과 농장을 한다며 사과를 들고 오질 않나, 스태프들이 돈을 모아서 커피차를 보내질 않나, 정말 그 매력의 원천이 궁금하다.

▶ 2편에서 계속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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